주니어 기획자 시절, 디지털 교과서를 만드는 윈도우용 저작도구를 기획한 적이 있다.
이 도구로 작업을 시작하려면 먼저 PDF로 된 교과서를 불러와 페이지로 변환해야 했다. 파워포인트로 치면 ‘새 슬라이드 만들기’와 비슷했다.
나는 당연히 이 기능을 작업의 첫 단계라고 생각했다.
페이지를 만들고, 그 위에 콘텐츠를 올리고, 편집을 이어간다.
플로우는 꽤 명확해 보였다.
그런데 실제 사용자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.
작업 중간에 다시 페이지를 만들기도 했고, 한참 뒤에 이 기능으로 돌아오기도 했다. 처음 한 번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던 기능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마다 다시 쓰였다.
내가 그린 플로우와 실제 사용은 달랐다.
그때부터 경험을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.
사용자는 우리가 설계한 순서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.
하나의 기능은 한 번 지나가고 끝나는 단계가 아니다. 필요할 때 다시 쓰이고, 다른 기능과 만나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.
블록과 비슷하다.
블록 하나의 모양은 정해져 있어도 무엇과 만나고 어떤 순서로 쌓이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. 같은 블록으로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.
경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.
좋은 경험을 만든다는 건 하나의 완벽한 플로우를 그리는 것보다, 반복되고 다시 조합되는 작은 경험들을 단단하게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.
AI 프로덕트를 만들면서 이 생각은 더 강해졌다.
사용자의 입력도, AI의 반응도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다. 모든 경우를 하나의 정해진 흐름 안에 넣기는 더 어려워졌다.
그래서 경험을 더 작은 단위로 보고 싶어졌다.
직접 설계한 경험을 기록하고, 잘 만든 경험은 하나씩 해체해보려고 한다.
좋은 경험은 어떤 블록들로 만들어질까.
Experience Blocks는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.